• 내 차 안에는 오래된
    나무 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많이 낡고 빛이 바랜 십자가입니다.

    학창 시절, 한 교수님이
    자신은 자동차 안에 십자가를
    걸어 두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본인의 운전 습관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였습니다.

  • 젊은 날, 그를 위해
    십자가를 지리라는 야무진 마음으로
    나무 십자가를 차에 걸었던
    그 첫날이 기억이 났습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며
    운전하던 시간도 있었고,

    감정에 휘둘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 어느듯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
    이제는 나무 껍질마저 벗겨져
    군데군데 상처 난,
    볼품없는 장식이 되어 버린 십자가.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십자가.

    이 작은 나무 십자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 이 작은 나뭇조각은
    마법의 도구도 아니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장식도 아니고,
    사고를 막아 주는 부적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의 표시도 아니고,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려는
    인식표도 아닙니다.

  • 차에 올라 시동을 걸 때마다
    이 작은 십자가는 말없이
    거기에 걸려 있습니다.

    내가 가는 방향이 어디든,
    내가 받은 것이 값없이 주어졌지만
    아무 대가도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마라고
    말없이 건네는 표정처럼 말입니다.
  • 그래서인지 이 십자가는
    “잘하고 있다”는 확인보다는
    “기억하라”는 말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매일의 숨이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그의 돌보심에 모든 것을 맡긴 이들과
    함께 나누는 평안과 위로를 기억하라고.

    그래서 나는 이 작은 나무 십자가를
    차 안에 걸어 두고 다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기억하기 위해.

  • 내 마음을 내어드릴 때,
    그가 내 삶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오직 나 자신만 기억하기 위해서.

    그것은 내 구주와 나만이 아는
    그분과 나 사이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이 작은 나무 십자가를
    차에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