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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절 ~ 5절(1): 호부견자는 없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22-12-06 01:22
조회
63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사자(使者)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펴라.’”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쉬운성경 1:1~5)

1절부터 어렵다. 기독교의 엑기스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흠,,, 마가가 처음 글을 쓰고자 책상에 앉았을 때 어떻게 시작을 할 것인지 무척이나 고민했을 거 같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 대한 기록과 경험을 동시대 사람들과 나누고 또한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고 글을 쓴다고 하면 나의 성향 상 수십 밤을 고뇌에 지새웠을 것이다. 말이 수십 밤이지 아마 수백 밤 이상?
그리고 여러 가지  수사학적인 방법과 내가 배웠던 온갖 문학적 기법을 동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달랐다.
담백하다. 너무도 간단 명료하게 첫 문장을 써 내려 갔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된 거예요!' 라고 말이다. '예수'라는 이가 있는데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전한 복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성경에는 예수의 어머니가 나온다.  바로 마리아다. 그리고 마리아에게는 요셉이라는 남편이 있었다. 마가는 예수가 사람의 자녀가 아닌 신(神)의 아들이라고 감히 선포한다. 신의 아들이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걸까. 제우스가 다른 여신들과 결혼하여 수많은 자녀들을 낳은 거처럼 하나님 또한 그렇게 했다는 뜻은 아닐 터다. 신의 아들은 고대 사회에서 "하늘로부터 났다"는 의미로 경외의 대상이었던 왕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구약에서도 신의 아들(혹은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예수 시대 이후로는 예수를 부르는 호칭으로 집중적으로 사용되어졌다. 당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버지=아들' 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아버지의 모든 권력과 위엄, 영광 등은 아들에게 전해졌다.

오늘날에도 이 공식은 비슷한 것 같다. 대기업 총수들도 아들에게 그가 일으킨 부와 기업을 승계하는 일이 흔하다. 아! 가끔씩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지금은 할.많.하.않. 최근에는 덜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도 남녀차별 현상이 심해서 아들보다는 딸들이 찬밥 신세가 많았던 건 부정할 수 없다. 이건 우리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여동생의 생생한 어릴 적의 증언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새언니 앞에서만 목소리 크다!

20세기 들어서는 여성들의 권리와 위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하기야 지난 수십 세기 동안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제도 하에 억눌려 왔던 건 사실이다. 남녀가 평등하게 창조 되었다는 건 창세기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의 힘이 우월했기에 아무래도 여성이 더 수동적인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게 불과 몇 십 년이 채 안 된 걸로 알고 있다.

 현대에는 남성 전유물로만 인식이 되던 많은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해서 활약하고 있다.


인류시작이 모계사회였는지 부계사회였는지 의견이 많이 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기점으로 힘(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곧 여성보다는 남성이 신체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부계사회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힘에는 상대를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 지위이든 말이다. 그래서 힘을 잘못 컨트롤하거나 힘의 지향이 일방적일 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특히 남성들의 힘이 그릇되게 사용되어 여러 분야에서 기형적인 변화가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게 마초문화 및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 등이다.

한국 사회 또한 그동안 누적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시대의 조류와 맞물려 마치 댐이 무너져 한순간에 물살이 터져 나오는 듯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최근에 형성되고 있다. 사실 '남성 vs 여성'이라는 진영논리라는 틀 안에 갇힌 듯한 인상이 많이 든다. 과연 정치인들만의 잘못일까? 남녀가 생물학적 차이가 다르다고는 하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차별과 불이익, 그리고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한 여성들의 반격(?)과 남성들의 수성(守成). 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는 너무나 아득한 걸까.
어쩌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표현도 시대착오적이란 단어라고 주장하는 날도 올 수 있겠다(사실 진보적인 신학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젠더갈등과 성평등의 해법은?


삼천포로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돌아 가야겠다. 아무튼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면 곧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 또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까지도 유일신(唯一神)만을 믿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당시에 야훼 외의 다른 존재인 예수를 하나님이라 칭했을까. 물론 소수의 유대 계통 사람들에게만 벌어진 일이다. 예수를 따라 다닐 때는 그들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과연 이 자가 우리를 로마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러 온 구원자일까? 그 옛날 다윗의 영광을 재현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 왕이 될 자인가?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이런 건 안 물어 봤겠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으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음... 이제 막 시작했는데 연이은 질문에 자답을 하기에는 현재 위치 1장 1절. 갈 길이 너무도 멀다. 하지만 다행히(?) 마가의 강조점이 가장 서두에 있다. 추측하건데 이대로라면 마지막 16장까지는 이 선포의 부연 설명이 아닐까 혹시? 연역법 귀납법 생각이 난다
마가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렇게 책의 처음부터 과감하게 선포했을 테니.

그래, 나올 거 다 나왔다! 반 이상 온 거?
계속 마가의 글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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