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편리한 나라이지만, 편안한 나라는 아니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하나는 한국 사회가 주는 피로감이다. 분명 편리한 나라인데, 어째서 그곳에서의 일상은 때로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 걸까.
한국은 분명 편리한 나라다. 인터넷은 빠르고, 대중교통은 촘촘하고, 음식은 어디서든 배달된다. 행정서비스도 빠르고, 필요한 물건은 하루 만에 도착한다. 병원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고, 웬만한 문제는 검색 몇 번이면 해결할 수 있다.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살 때보다 미국에서 살 때 마음이 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국이 더 편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느린 일도 많고, 서비스가 한국처럼 정확하지도 않다. 행정 하나 처리하려고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게나 식당에서 약간의 불편을 겪는 것도 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불편을 어느 정도 그냥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불편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요구가 강하다. 문제는 이런 기대가 시스템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그 노력은 타인에게도 같은 수준의 행동을 요구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줄을 서는 방식, 주차하는 방식, 식당에서 행동하는 방식, 층간소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방식,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정상적인 기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은 쉽게 비난이나 지적으로 이어진다.
결국 모두가 서로에게 감시자가 된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만큼, 남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규칙을 지키는 만큼 다른 사람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무너지면 상당히 강한 불쾌감을 느낀다.
물론 이런 문화에는 장점이 있다.
한국 사회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높은 기대치도 분명히 있었다.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이 높으니 서비스의 질도 올라가고, 시스템도 빠르게 개선된다.
문제는 그 효율성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때다.
사람은 원래 조금씩 다르고, 실수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효율성과 규범 준수를 요구하면 사회는 편리해질 수 있어도 사람은 편안해지기 어렵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오히려 이런 '대충 넘어가는 여유'였다.
누군가 조금 늦어도, 서비스가 조금 서툴러도,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미국이라고 마냥 너그러운 것은 아니다. 동네 HOA 규정을 두고 이웃끼리 신고를 주고받는 일도 흔하고, 갈등과 불만도 넘쳐난다. 다만 적어도 일상의 모든 불편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압박은 한국보다 덜하다고 느낀다.
물론 느슨함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책임이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지켜야 할 규칙마저 느슨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불편을 없애는 것도, 그렇다고 모든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런 태도가 단순한 무관심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간섭하거나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편리함'과 '편안함'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편리함은 내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제공되는가의 문제다. 반면 편안함은 내가 조금 부족해도 되고, 조금 늦어도 되고, 남과 달라도 되는가의 문제다.
한국은 첫 번째에는 매우 강하다. 하지만 두 번째에는 아직 인색한 사회다.
그래서 한국에서 흔히 쓰는 '불편러'라는 말도 한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사소한 일에도 불편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유난스러운 개인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서로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측면이 크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사회가 획일적인 기준의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살던 시절에는 '정상적인 기준'이 하나였지만, 사는 방식이 다양해질수록 그 기준끼리 부딪히는 일도 잦아지기 마련이다.
한국에 이제 더 필요한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편안함이다.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고, 조금 불편해도 참을 수 있고, 남이 나와 다르게 살아도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불편을 없애는 것이 좋은 사회의 목표라면 한국은 이미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편리함만은 아닐 터. 이제는 질문을 바꿔볼 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편리하게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서로에게 얼마나 편안한 존재가 되어 주고 있는가로 말이다. 때로는 조금 불편해도 서로에게 여유를 남겨두는 사회가 훨씬 편안한 사회일 수 있다.
"스치는 생각을 그냥 툭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