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것,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순수한 열정을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하여
Menu
Search
START TYPING AND PRESS ENTER TO SEARCH
그것을 알려주마: 용어들
성경 해석을 위한 기초 작업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詩)나 소설을 감상하는데 반드시 문학 용어를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만, 저자의 문학적 기법과 숨은 동기 등을 이해하면 그 작품세계에 들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런 작업을 하려면 먼저 기본적인 용어들을 알아두면 편하죠. 성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자의 글쓰기 장치에 익숙해진다면 성경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훨씬 수월합니다.
펼쳐보기
전승과 편집 (2): 편집 - 편집의 손길 너머에 계신 분
작성자
민나인
작성일
2026-01-08 22:22
조회
26
전승과 편집: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요? (2)
성경을 읽다 보면, 유독 많이 등장하는 말투가 있습니다.
“~하셨다”, “~이르시되”, “~되었더라.”
아주 단정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문장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런 문장으로, 이런 형식으로, 이런 순서로 존재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어느 날 하늘에서 책 한 권을 통째로 내려주신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성경은 생각보다 훨씬 사람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말로 전해지고, 기억으로 남고, 공동체 안에서 다듬어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기록되고, 다시 엮이고, 선택되고, 배열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전승과 편집’, 그 두 번째 이야기는 '편집(編輯, Redaction)'입니다.
1. 편집은 뭘까? 전승이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면, 편집은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는 마지막 손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 말로만 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죽고, 세대는 바뀌고,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누군가는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남겨야 한다.”
“잊히면 안 된다.”
이때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포로기 이후, 혹은 예수님 부활 이후 초기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문자로 남겨진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기록은 모든 이야기를 다 적는 일이 아닙니다. 기록은 단순한 받아쓰기 작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적을 것인가. 무엇을 빼둘 것인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낼 것인가. 이미 선택의 연속입니다. 이 결정 하나하나에는 기록자의 신앙과 공동체의 상황이 반영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기록자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고, 공동체 안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록된 성경은 ‘그때 있었던 모든 일’이 아니라, ‘그 공동체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의 결과물입니다. 성경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나가서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CNN 종군 기자의 기록이 아닙니다. 신앙 고백의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이 신앙 고백을 위해 기록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바로 '편집'이라는 행위입니다.
성경의 편집 과정에는 한 사람만의 독백만 있는 게 아니다.
2.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는 손, '편집'이라는 창조적 행위 ‘편집’이라는 말, 왠지 뒤에서 몰래 가위질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현대에 와서 유행하 말 중 '악마의 편집'이란 말도 있죠. 앞뒤 말 싹 잘라 내고 본인에게만 유리하게 편집하는 의도입니다. 뭔가 부정적으로도 들립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편집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작업입니다. 이야기를 왜곡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에 방향을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이미 존재하던 이야기들, 이미 기록된 자료들, 이미 전승되던 전통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묻는 겁니다.
“이 이야기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가?”
“무엇을 앞에 두고, 무엇을 뒤에 둘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할 것인가?” “이 사건을 이 시점에 두면 독자들은 무엇을 느낄까?”
이건 단순한 배열이 아닙니다. 이건 신학적 선언입니다. 편집자는 단순히 글을 옮기는 필사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학자이자 목회자이자,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사무엘서와 역대기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역대기 편집자는 다윗의 치명적인 실수(밧세바 사건 등)를 과감히 생략하고 성전 건축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의도적인 재구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포로기 이후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우리의 뿌리와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려는 신학적인 결단이었습니다. 사건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묶는 관점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왕을 바라보는 시선도,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도, 공동체의 상처와 기대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는 말합니다.
“이 공동체는 지금 이것을 들어야 한다.” “이 사건은 이렇게 읽혀야 한다.”
또다른 대표적인 예가 신명기입니다. 학자들은 신명기를 ‘모세의 유언’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수백 년 후인 바벨론 포로기 무렵에 편집된 책으로 봅니다. 왜 그 시기에? 포로된 백성들이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고 자책할 때,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정리해서 희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편집자는 과거의 전승을 현재의 아픔에 맞춰 다시 배열한 것이죠.
창세기에 창조 이야기가 두 번 등장하고, 출애굽 이후에는 율법이 길게 자리하는 것도 신학적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구원은 곧 관계의 재정립이다.”
이 메시지를 편집의 구조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3. 같은 사건, 다른 목소리 (네 개의 렌즈)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의 복음서로 오면 이 '편집의 신비'는 절정에 달합니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로 알려져 있는데, 짧고 급박합니다. 로마의 박해 속에서 고난받는 교회에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으니 우리도 견뎌야 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말이죠. 마태복음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구약 인용을 잔뜩 넣어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다”를 강조하고, 누가복음은 이방인과 약자를 향해 “하나님 나라가 바로 너희에게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아예 고도의 상징과 신학적 사유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라는 한 분의 삶을 다루지만, 각자가 찍어낸 인화지의 색감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 맞춰 전해 내려온 자료들을 배치하고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만약 성경이 '객관적인 cctv 기록'이어야만 한다면 이런 차이는 오류가 되겠지만, 성경이 '고백된 신앙의 기록'이라면 이 차이는 오히려 풍성함이 됩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거울이 비추는 빛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입체적인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거니까요.
이렇듯 편집자는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고,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연결하면서까지 공동체가 꼭 들어야 할 메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인위적인 손길을 왜곡이나 조작으로 볼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신학적 해석'입니다. 성령께서 공동체를 통해 말씀을 정리하시고, 시대마다 필요한 빛을 비추게 하신 과정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기록된 이야기엔 저마다의 목소리를 담았다.
4. 그래서 이걸 왜 알아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전승과 편집을 알면 처음엔 성경이 좀 낯설어질 수 있습니다. “아, 이게 한 번에 딱 완성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순간, 약간의 어지러움? 그런데 그 어지러움이 지나면 오히려 더 큰 안도감이 옵니다!
어떻게?
성경이 인간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의 세심하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아니라,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우리를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문화와 상황 속으로 들어오셔서 “나 여기 있어” 라고 말이죠. 우리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고.
전승과 편집을 통해 우리는 성경을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로 읽게 됩니다. 오늘 나의 아픔과 질문 속에서도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죠.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전승과 편집은 성경이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증거입니다. 죽은 글씨가 아니라, 숨 쉬는 이야기니까요.
성경은 멀리 있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삶 한가운데서, 우리의 입과 손을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말하고, 다시 해석하고, 다시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싶어서, 우리는 이렇게 돋보기를 들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죠.
에필로그
“얘들아, 우리 하나님이 바다를 갈랐대, 글쎄!”
이 말 속에는 과학 보고서도 없고, 연대기도 없고, 지질학 설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고백 하나는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살아 있는 이유, 그분 때문이야.”
전승은 이 고백을 지켜냈고, 편집은 이 고백을 다음 세대에 건넸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은 완벽한 교과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숨결이 겹겹이 쌓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성경은 지금도 (당연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전승과 편집은 성경을 의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사랑하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우리 삶의 먼지 속에서 빚어진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 삶과 계속 연결됩니다.